제목 : 나는 그녀의 개똥이입니다.
- 나와 가까운 사물, 동식물이 되어 나 관찰하는 글쓰기
(수업 중에는 나 관찰하는 글쓰기인 줄 몰랐어요. 가끔 눈이 고장이 나서... 이어 쓰면서 살짝 고쳐 썼어요)
나는 개똥이다. 이 집에서 나는 개똥이로 통한다. 가끔 내 똥을 먹다 들켰을 땐 똥개로 불리기도 하는데, 보통 땐 개똥이다. 개똥이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지어 준, 나의 두 번째 이름이다.
처음 그녀가 그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었을 때, 그녀의 얼굴에 환하게 번져나가던 아름다운 미소를 아직 기억한다. 그 미소가 너무도 따뜻하고 푸근했기에, 나는 개똥이라는 이름이 ‘유별나게 사랑스럽다’ 혹은 ‘엄청 귀여워 죽을 것 같다’는 의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 이제 나도 알 건 안다. 이 집에서 그녀가 가장 편하고, 가장 만만하고, 가장 대충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나여서 내가 개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 진짜 이름은 레오이다. 하얀 털에 큰 눈이 마치 추억의 애니메이션 ‘밀림의 왕자 레오’에 나오는 주인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척 예쁜 이름이기도 하고, 무척 흔한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 말티즈 중에는 레오라는 이름이 인간으로 치면 철수, 영희 수준으로 많다. 동네 마실만 나가도 하루에 한두 마리 정도는 만날 수 있다.
나의 사랑 그녀는 새로운 인간을 만날 때면 늘 나를 이렇게 소개한다.
“얘는 우리 집 개똥이에요. 애가 순둥순둥하죠? 막 만지셔도 괜찮아요. 절대 안 물고, 성가셔 하지도 않아요. 세 번째 개라 막 편하게 키웠더니 애가 성격이 좋아 거의 발로 키웠어요. 밥 주고, 산책 시켜 주고, 씻겨 주고 딱 고것만 하는데도 병치레 없이, 말썽없이 어찌나 잘 크는지... 역시 사람이든, 개든 개똥이로 키워야 한다니까.”
그녀가 나를 개똥이로 소개할 때 그녀는 위풍당당 그 자체이다. 호기로운 목소리, 당당히 편 어깨, 수다스러움 뒤에 묻어나는 특유의 웃음소리, 미소 띤 얼굴... 사람들은 그녀가 보여주는 것만 볼 테니 말이다. 그 말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그녀 특유의 자책과 깊은 미안함은 아마 나밖에 모를 것이다. 알기에 나는 앞발을 더 높이 쳐들고, 꼬리를 힘차게 흔들며, 혓바닥을 내밀고 거칠게 헥헥거리며 뉴페이스에게 돌진을 한다. 내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감동을 먹은 새로운 인간이 내뱉는 감탄이 그녀의 위풍당당함에 힘을 더 실어 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 나의 엄마는 참 미안한 게 많은 사람이다. 그녀는 바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일을 하거나, 컴퓨터 책상 앞에서 수업 준비를 하거나, 수업을 하거나, 아니면 그녀의 아들을 돌보느라 나와 놀아 줄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뻑 하면 내 앞발을 붙잡고 사과를 한다.
“우리 개똥이 심심하지. 엄마가, 엄마가 바빠서 미안해.”
바쁜 게 미안할 일은 아니라며 내가 열심히 꼬리를 흔들어 보지만 당시뿐이다. 내가 개똥이라는 단어 다음으로 많이 듣는 게 미안하다는 말이다. 나는 그저 심심해서 그녀를 따라다닌 것 뿐인데도 미안하다, 나는 그저 그녀가 나를 바라봐 주는 게 좋아 헥헥거린 건데도 미안하다, 내가 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산책 시간까지 못 기다리고 마룻바닥에 오줌을 싸 버린 건데도 미안하다. 듣는 사람 미안해질 만큼 그녀는 사과를 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시간이 차고 넘쳐도 나와 놀아 주는 일은 없는 그녀의 아들에게도 그녀는 늘 저렇게 사과를 한다.
“우리 아들 심심하지. 엄마가, 엄마가 바빠서 미안해.”
그녀가 그럴 때 그 어린 인간 녀석도 나처럼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데, 그 녀석은 그러지 않는다. 온갖 볼멘 소리에, 가끔은 말 안 통하는 네살배기 애들처럼 등을 바닥에 붙이고 누워 사지를 휘저으며 떼를 쓰기도 한다. 우리 개들은 그런 거 7~8개월 개춘기 즈음에 다 떼는데, 인생 10년을 산 녀석이 아직도 떼를 쓰다니 인간 애들은 참으로 한심한 족속이다. 그런 녀석에게 미안할 필요는 눈꼽만치도 없는 거라고 그녀에게 잔소리를 해 보지만, 그녀는 그저 옆집 개 짖는 소리 정도로 듣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미안해 하는 느낌을 덜 받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녀가 컴퓨터 앞에서 바쁘게 앉아 일할 때는 발밑에서 혼자 소리 나는 장난감을 던지고 받고, 던지고 받고 논다. 입으로 던졌다가 내가 다시 받아야 하는데, 열 번에 한 번도 받기 힘들다. 가끔 나의 이런 기척에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그때가 가장 좋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려 나도 모르게 장난감을 집어 던지고 그녀에게 달려가는데 그러면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던 일을 한다. 그러면 나는 또 그녀가 봐 줄 때까지 혼자 던지고 받고 놀이를 하곤 하는 것이다.
나는 하루 중 그녀와 산책하는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 그녀의 입에서 산책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에는 그녀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단박에 알아들을 수 있다. 그녀의 입에서 산책이란 두 단어가 흘러나올 때 사방의 공기가 짜릿하게 흔들리며 아찔한 공명을 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무 좋아서 펄쩍펄쩍 뛰어오르게 되는데, 그러다 그만 참았던 오줌보가 새서 바닥에 오줌을 흘려 놓기도 한다. 재수가 드럽게 없는 날, 그렇다. 그런 날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세상 무서운 몬스터로 변하는 것을 보아야 한다. 어떤 때는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운지 내 예민한 대장이 깜짝 놀라 오줌과 똥을 동시에 밀어내기도 한다. 그런 날은, 지옥을 경험하는 날이다.
황공할 만큼 작은 일에도 사과를 잘하고, 사랑도 철철 넘치는 그녀이지만, 내가 그녀가 싫어하는 짓을 했을 때는 왠만한 맹견 못지 않게 무섭게 돌변한다. 효자손을 들고 쫓아오기도 하고, 몇 대로 분이 안 풀리면 그날은 산책이고, 때로는 밥도 없다.
그녀 말로는 내가 거실 바닥에 똥오줌을 싸면 그 냄새가 독해서, 그냥 닦는 것으로는 안 되고 락스로도 닦고, 뜨거운 물로도 닦고 그래야 한단다. 그 작업이 무척 고된 것인가 보다. 하루에 한 번 정도는 그냥 넘어가기도 하는데 두 번 이상이 넘어가면 나는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 하긴 나도 체신머리 없이 집안에 나의 오물을 부려 놓는 게 싫은데, 그녀는 얼마나 싫겠는가. 그래도 제발 때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난 보기보다 겁이 많고 대장이 과민해서 그녀가 괴물의 얼굴로 변하기만 해도 장이 꿀렁꿀렁대기 때문이다. 그럴 땐 정말 악순환이다.
나는 그녀에게 불만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차별 대우이다. 나는 그녀의 말이라면 뭐든 잘 듣는다. 목숨 걸고 듣는다. 그런데 이 집 작은 인간 녀석은 다르다. 그녀의 아들 말이다. 그 녀석은 그녀의 말이라면 어떤 말이든 안 듣는다. 밥 먹으라 하면 책 읽고, 씻으라 하면 유튜브나 보고, 자라고 하면 거실을 뛰어다니며 논다. 지켜보고 있는 나도 짜증이 날 정도이다. 어떻게 일년 365일을 줄기차게 그럴 수 있는가 말이다. 정작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아야 할 녀석은 그 녀석인데 그녀는 그 녀석에게는 손도 대지 않는다.
요즘 그 녀석은 수시로 그녀에게 대드는데, 나는 그녀와 그 녀석이 대치할 때 주로 화장실 변기 뒤로 들어가 숨어 있는다. 혹 불똥이 내게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활화산 같은, 잡히는 대로 다 불싸질러 버릴 것 같은 화는 때로 방향을 잃고 공중을 배회하다 내게 날아들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에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생이별을 한 진짜 엄마가 생각난다. 그런 날엔 엄마와 아들 녀석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길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길게 하울링을 한다. 엄마, 엄마, 보고싶어 울면서 한다.
늘 바쁜 그녀가 아주 가끔 한가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녀는 쇼파에 누워 그녀의 아들과 영화나 티비를 보면서 과자를 먹는다. 내가 가진 이쁨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다. 운이 좋을 때 아들 녀석의 손에 들린 간식이 내게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분파라 종종 기분이 좋으면 그녀가 정한 규칙을 잘 깨기도 한다. 개는 개를 위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철통같은 규칙을 깨고, 아들 녀석 손에 들린 과자를 내게도 흘려 주는 것이다. 그럴 때 그녀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아, 그런 날이 매일매일 반복된다면 나는 얼마나 사는 게 행복할까.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가 아무리 바빠도 나를 위해 1일 1산책을 시켜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1일 2똥을 1일 1똥으로 바꿨다. 아주 가끔 너무 많이 먹어서 똥을 참지 못해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또 그걸 그녀가 보기 전에 먹어서 없애려다 들켜서 디지게 맞기도 하지만, 나는 매일매일 노력하고 있다. 똥오줌을 혼신의 힘을 다해 참았다가 그녀가 산책 시켜 줄 때 싸면 그녀의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가 번지고, 나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그녀의 온 몸이 위풍당당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날 그녀는 나의 똥봉투를 들고 자신있게 동네를 몇 바퀴 돈다. 그리고 만나지는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며 나를 소개시킨다.
“우리 집 개똥이에요. 얘는 집에서 똥을 안 싸서 이렇게 매일 데리고 나온답니다.”
그러면 나는 근육으로 옹골지게 다져진 내 뒷다리로 깨끔발울 뛰며 다가간다. 이웃 분들이 감탄하도록 내가 아는 묘기는 다 부린다. 이웃 인간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올 때까지 말이다. 미친 듯 꼬리 흔들기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감탄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녀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해질녘 노을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한번 배변의 욕구를 느끼며 내 가슴 줄을 힘껏 잡아 끌곤 한다.
신호가 온다. 이런 타이밍에 어찌 아니 쌀 수 있겠는가. 세상을 다 가진 듯 내 대장이 춤을 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