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사는 형형색색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열대어들을 먼 곳으로 옮길 때에는 같은 어항에 뱀장어를 몇 마리 풀어 놓는다. 열대어들이 천적인 뱀장어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아 도망다니는 동안 떼죽음 없이 긴 항해를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위기감과 긴장감이 되려 삶의 활력이 되어 생명력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라고 다를까. 뱀장어가 없는 삶은 평안하지만 무료하다. 적당한 위기감, 적당한 긴장감은 탄력없이 축 늘어진 삶에 따끔한 자극이 된다. 안정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뱀장어 없이도 평안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 삶의 뱀장어는 때로 사람이기도 했고, 상황이기도 했고, 일이기도 했고, 오랜 시간 거의 대체로 돈일 때가 많았다. 어쩌면 열대어처럼 스스로 삶의 동력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뱀장어는 삶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너무도 잘 다니던 저학년 팀 하나가 해체되었다. 이곳으로 이사와 꾸린 팀이라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내게로 와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였고, 심지어 짧은 시간 눈에 띌 만큼 글쓰기가 늘었던 아이들이라 더 충격이 컸다. 매일 내게 오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녀석들이었다. 이유는 영어였다. 영어 시험 성적이 형편없이 낮게 나왔고, 그래서 주2회에서 주3회로 시간을 바꿔야 하는데 뺄 수 있는 게 독서논술 시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들고남이 자주 있지는 않지만, 또 자연스럽기도 한 일이라 별다른 사건 없이, 영어 수학에 밀려 하게 되는 퇴원이야 그러려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직 내가 삶의 기반이 잡히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가. 어제는 꽤 뒷통수를 세게 후려맞은 듯 정신이 얼얼했다.
나 빨리 기반 잡아야 하는데, 얼른 생활을 안정권에 올려놓고 내 꿈도 이뤄야 하는데... 조급증에 머리 속으로 심장이 옮겨간 것처럼 터질 듯 쿵쾅쿵쾅 뛰었다. 내 안의 나들이 서로 삿대질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 너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간 뱀장어가 없었지? 희미한 상태로 과거 타령, 꿈 타령, 마음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바가지가 새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둘러 봐. 어디 그 바가지만 새나. 하나의 내가 대차게 삿대질을 해대자 다른 쪽 나도지지 않고 맞선다. 내가 놀았어? 내가 정신을 놓았어? 나 할 것 다 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도 갖겠다 한 것 뿐이잖아! 너 지금 또 이렇게 삶에 후루룩 휩쓸려 갔다간 나중에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익숙한 풍경이다. 내 안의 나들은 삶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분열하고, 쉽게 싸우고, 쉽게 토라진다. 생활의 여유가 없을 때일수록 더하다.
나는 일단 그 싸움을 멈춰야 했다. 내가 나와 싸운다고 해결될 일은 하나도 없다. 외부로부터 온 충격이다. 타인의 변심으로 벌어진 일, 내 아무리 저항해 봐야 내가 해결할 수 없음을 경험으로 안다.
나는 따뜻한 물을 받아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목욕을 했다. 아이를 재워 눕히고, 내 서재로 와 한참을 하얀 모니터를 응시하고 앉아 있었다. 깜박이는 커서를 따라 내 마음도 켜졌다 꺼졌다 했지만, 단 한 자도 쓰지는 못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스케줄러를 펼쳐 다음 날 해야 할 일들을 수기로 써 나갔을 뿐이다.
오늘 학부모를 만나 정리를 하고,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엄마들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보냈다. 요즘 꽤나 열심히 하는 학생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내 자존감이 회복될 만큼 두둑하게, 옆구리 찔러 칭찬을 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던 중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눈에 서린 비장함은 뱀장어의 향기를 맡은 듯도 하다. 우린 서로 씨익 웃어 주었다.
살면서 숱한 뱀장어를 만나왔고, 꽤 오랜 시간, 어쩌면 거의 모든 시간을 뱀장어와 함께였다. 내 인생의 배는 여전히 긴 항해 중이고, 나는 나를 살리기 위해 뱀장어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외면하지 않았다. 그 긴장을, 그 불안을 삶의 활력으로 이용해 보기로 한다.
나의 삶은 유년보다 초년이 나았고, 초년보다 청년이 나았으며, 청년보다 중년이 나았다. 그래서일까.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기대, 내일은 오늘보다도 더 아름다울 거라는 믿음이 내겐 있다. 이제껏 잘해왔고, 또 잘하고 있기에 가질 수 있었던 확신이다.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어떻게든 나는 앞으로 나아갈 거니까. 당분간은 속절없이 좀 비장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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