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가위를 들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내 선택에 확신이 들지 않아서이다. 어린 잎들이 더 힘차게 자랄 수 있도록 묵은 잎을 잘라내 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묵은 잎들의 물관이 굳고, 줄기에 붙은 잎들이 누렇게 황갈색으로 변해서 스스로 낙엽이 되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까. 지난 몇 주째 나는 같은 고민을 하며 아레카야자의 곁을 빙빙 돌고 있다.
이 집은 유난히 볕이 잘 든다. 고층인 데다 아파트가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안방과 거실에선 일출이, 부엌창과 내 방에선 일몰 감상이 가능하다. 통풍도 좋아서 부엌창과 거실창을 동시에 열어두면 온 집안 가득 너울너울 바람의 향연이 펼쳐진다. 햇살과 바람을 품은 집, 그래서일까.
거실의 넓은 창 아래 둔 떡갈나무와 아레카야자와 여인초와 보스톤 고사리는, 지난 해 여름 이 집으로 이사오고 난 뒤로 보란 듯이 새 잎을 내고 또 내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 순이 나 있고, 또 자고 일어나면 새 순이 올라오고. 지난 4년 간 새 순 한번 올린 적 없는 식물들의 변신에 놀라, 한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거실 창가로 달려가 또 새로 올라온 순은 없나, 내가 놓친 어린 잎은 없나 확인하던 때도 있었다. 특히, 야레카야자는 번식력이 유독해서 10개가 넘는 새순이 한꺼번에 올라오기도 했다. 그 힘을 어디다 숨겨 두었던 것인지, 일 년 내내 쉼없이 새순을 올리고 있다.
4년 전, 집에서 놀고 있던 네 개의 빈 화분들을 들고 근처 도매 화원을 찾아가 각 화분들에 어울리는 생명들을 고를 때, 다짐을 했더랬다. 내 삶이 또 휘청이는 순간이 와도 나는 어렵게 찾은 나의 일상을 잃지 않겠다. 너희들을 보살피는 일을 잊지 않겠다. 어떤 큰 비에도지지 않고 내 마음을 지켜 나가겠다. 내 소중한 것들을 지켜내겠다.
그런 나의 과도한 결기는 겉으로 보기에 과도한 불안과 과도한 조심성으로 비춰졌던가 보다. 인터넷 주문에, 오프라인 손님들까지 하느라 분주한 화원 직원들을 반나절 내내 졸졸 따라다니면서 식물을 고르고, 키우는 법을 확인하고, 주의할 사항들을 메모하는 나를 카운터에서 흘끗흘끗 쳐다보던 화원 주인이 기어코 한 마디 던졌다.
“아니, 애 입양해? 뭘 그렇게 벌벌 떨어. 잘 안 죽는 애로만 잘 골라놓구선? 그리고 그렇게 다 안 죽이고 잘 키우면 나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라고?”
날선 화살촉처럼 곧장 내 등에 날아와 박힌 그 말을 “어머, 그러네요? 이러다 진짜 안 죽으면 어뜩하지?” 하고 내가 예민하지 않게 맞받아치자 화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다 함께 와그르 시원하게 웃어 제꼈던 일이 엊그제같다.
그렇게 화초들이 내게 온 건 4년 전이지만, 그 큰 화분들이 내게로 온 건 신혼 초, 집 꾸미기에 여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횟수로 십년 전이다. 혼자 살아온 시간 동안 작은 화분은 겁없이 사서 키웠는데, 큰 화분은 부담스러워 집 안에 들인 적이 없었다.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죽으면 처치할 때 너무 힘들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 당시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무슨 바람이 불어서였는지, 동네 화원에 가서 크고 멋져 보이는 화분들로만 통 크게 네 개를 들였다. 벤자민과 녹보수, 그리고 또 희귀해서 이름이 안 외워지던 식물 두 개가 더 있었다.
나는 한동안 베란다에 키우던 작은 화분들 곁에 그 큰 화분들을 데려다 놓고 퇴근하면 왔다고 인사하고, 출근할 땐 다녀올게 인사하고, 주말이면 그것들을 마주 하고 앉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뿌듯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대곤 했다. 내 세상을 초록초록하고 싱그롭게 채워 주는 그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기쁘던 시간이었다. 그게 곧 앞으로 펼쳐질 나의 미래같이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한 평 반 남짓한 그 아름다운 정원에서 나도 행복도 영원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이 있던 해 겨울, 나는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엄동설한에도 그 화분들을 거실로 들이지 않았다. 당시 신생아였던 아들을 보러 자주 들르던 시어머니가
“아이고, 저러다 화분 다 죽지. 이렇게 추울 때는 잠시 좀 들여야지, 저렇게 놔두면 다 죽는데... 키우지도 못할 것을 왜 사가지고...”
한심하다는 듯, 갑갑하다는 듯 몇 번을 아는 척을 해도, 나는 아무런 대답도, 베란다 쪽으로 눈길도 한번 주지 않았다.
죽여야 했다. 싹 다 남김없이. 다 죽여야 했다. 아파트 사이사이로 보이는 먼 곳의 노을이 황홀하게 예뻤던 동대문구의 한 오래된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는 나의 푸르고 싱그로웠던 꿈을 그렇게 모조리 얼어 죽였다. 물도, 볕도, 눈길도 주지 않고 죽여 버렸다.